절이 깊은 산속 높은 곳에 있는 이유
한 달에 한번 명상 법회를 위해 새벽에 집을 나섭니다. 제가 다니는 사찰은 차로 가파른 길을 굽이굽이 올라가야 하는 영천 채약산 산허리쯤에 자리하고 있는 보국사라고 합니다. 새벽 명상을 마치고 나오니 길에 파이프를 묻는 공사가 시작되어 바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 생겼어요. 절이 산 아래 있다면 다니기도 편할 텐데요. 절이라고 하면 다들 높은 산 깊은 곳에 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절이 깊은 산속 높은 곳에 있는 이유를 찾아봤습니다.
언제부터 절이 산에 있었나요.
요즘은 도심 속에서 사찰을 종종 볼 수 이 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사찰들은 대게 명산에 있고 일주문을 지나 한참을 들어가야 사찰을 만날 수 있는데요. 옛날에는 교통도 불편하고 먼 곳 높은 곳에 있는 사찰에 다니기 힘들었을 텐데 어떻게 다녔을까요.
옛날 불교가 융성한 시기에는 사찰이 도심과 산속 모두 있어 도심 가까운 곳은 주로 왕과 귀족이 다니며 산속 사찰은 가끔 여행 가듯이 큰 맘먹고 다녀왔다고 합니다. 이후 조선시대로 넘어오며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시대가 오니 도시 속의 절이 사라지게 되었답니다.
한옥은 나무못을 사용하고 짜맞춤 목조건물로 개조가 용이 해서 사찰을 헐고 양반집을 새로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도심 속의 사찰은 양반집으로 변하고 이동이 불편한 산속 사찰만 남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찾아가는 유서 깊은 사찰을 떠올리면 고즈넉한 산사를 생각하게 되는 게 이 때문입니다.
사찰은 도시와 사람들곁에 있어야 해요.
금강경에서 제일법회인유분에 보면 "이때 세존께서는 공양때가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들고 사위 대성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성안에서 차례로 걸식을 마치고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뒤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라는 구절을 첫 장에서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탁발에 의존했기에 사찰이 마을에서 먼 곳에 있지 않았으며 지속적으로 세속에서 포교하라는 뜻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는 사찰이 도시 가까이 부담 없이 지어져야 한다는 얘기인데요. 종교는 개인 수행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선한 영향을 끼치는 책임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교통이 편리해져 산속이라도 바로 턱밑까지 갈 수가 있습니다. 덕분에 사찰이 도심으로 많이 온 것이겠지요. 도심 속에 꼭 한옥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현대시대에 어울리는 모습으로 생활 속에 가까이 스며들어 사회를 이끌며 맑게 하는 게 오는 날의 사찰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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